또봇

[셈공] 망각, 그 두번째 이야기

dalian (다련) 2015. 8. 7. 22:14

꽤 많은 삶 속에서 기억이라는 개념이 생길 때쯤이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었다. 말하는 자동차, 친구로 여기던 보라색 자동차, 그리고 한 소년. 유일하게 기억을 제외하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소년. 몰래 옆에서 힐끔 쳐다볼 때마다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던 그 소년, 권세모.


소년과의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 곤란한 상황에서도 소년의 보랏빛 눈만은 한눈에 들어왔었으니까. 온달이의 병실에 있던 미지근한 꽃병 속에 담겨있던 스타티스를 떠올리게 하던 그 눈. 그 눈을 가진 그 소년이 다시 보고 싶어서 두 번째 기억에서는 소년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대도시를 찾아갔었지만 대도시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일상을 보내면서도 틈틈이 소년을 찾으려 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소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시도 끝에 한 번도 소년을 볼 수 없었고, 소년을 못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소년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 기억도 30살이 되면 또 사라질 것이다. 항상 그러했듯이. 그러니까 나는 이번에도 포기한 채로 살면 되는 것이다.





역시나 이번에도 소년을 만나지 못한 채 기억이 점점 소실되고 있었다.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린 기억들이 바람을 타고 내려와서 찰랑이는 기억의 바닷속,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심해의 구덩이 속으로 가라앉았다. 뽀글뽀글, 소리도 없이 조용히.


기억의 재들이 심해의 구덩이를 거의 다 채울 무렵, 하나를 만나러 가던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보랏빛 눈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멈추고 뒤돌아섰지만, 소년으로 보이는 인물이 없었다. 하긴, 있어도 못 알아볼 것이다. 다시 가던 길을 한 발 한 발 내디디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왜 아직도 그의 흔적을 찾는 걸까 나는?


하얀색에 까만색을 들이붓고 마구 휘저어서 탄생한 회색빛처럼,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이, 머릿속이 마구 뒤섞인 것 같아서, 괜히 걸음을 빨리해 하나와의 약속 장소로 갔다. 괜찮다. 이 마음도 곧 잊어지고, 재가 될 것이다. 그래야 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해질 것만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