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후리

[아베미하]나만 알고 있는 목소리

dalian (다련) 2016. 10. 7. 21:42

 

또다 또, 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주 작지만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툭툭 던져지는 목소리는 제 몸을 움찔움찔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저, 갑자기 툭 자신을 쳐서 뿐만은 아니라, 좀체 적응할 수 없는 목소리의 내용 탓이었다. 누군가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간질간질함에 몸이 꿈틀거린다고 했던가, 하여튼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 방년 16세 아베 타카야는 자신을 향한 연애소설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었다.

 

 

*

 

 

아베군, 안녕. 학교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에 맞받아 인사를 하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 아무도 없었다는 일은 잠시 등이 오싹오싹한 별거 아닌 일이었다. 단 한 번뿐이었다면.

 

매일같이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답하는 일은 주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할 뿐이어서, 이제 나는 그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대답을 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누군지 모를 사람의 목소리라면 대답을 하지 않는 바람에 진짜 사람에게 두 번씩 말하게 한다거나 하는 일도 생겼다.

 

요즘, 정신을 빼놓고 다니는 것 같아. 아베군.”

역시 그렇게 보이나.”

 

사실은 그 반대였지만, 신경을 쓰면 쓸수록 목소리의 구분이 어려워져서 이런 말을 듣는 일도 잦아졌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질책이든, 걱정이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짜증이 커져가고 있었다. , 정말 짜증나.


아베군, 기분 안 좋아 보이네.

, 괜찮아.

 

답을 하고, 화들짝 놀라서 앉아있던 자세를 고치면서 주위를 훑었다. 다행히, 입 밖에 소리를 내지 않은 것 같았다. 놀란 심장을 가벼운 심호흡으로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진정이 되고 기운이 빠져서 책상에 엎드렸다. 기운이 빠져서 마음이 풀어진 건지 곧 잠이 들락말락 하던 중에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다. 분명, 나는 낯선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답이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같이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엔 답을 하지 않고 있는 때라면 더욱이.

 

그럼, 그 사람이 내게 너무 익숙한 사람인 거 아닐까?

 

한참을 곱씹히던 생각이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서, 바로 누군지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제 인간관계가 그렇게 넓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의 주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찾을 거면 진작에 알았을 것이었다.

 

아베군이다. 아베군을 또 만나다니 오늘은 운이 엄청 좋은 것 같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목소리의 여자애는 잘 모르겠는데.

 

,베군, 안녕.”

, 미하시. 안녕.”

 

멍하니 생각하고 있다가 미하시의 인사에 늦게 반응하는 바람에 미하시의 모습을 조금밖에 못보고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상태가 꽤 좋아 보였던 것 같아서 오늘의 연습도 괜찮겠구나 하고 만족스럽게 발걸음을 뗐다. 하지만, 많이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방금, 미하시의 목소리, 그 목소리랑 비슷하지 않았나?

 

미하시가 그 목소리의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종이 칠 때까지 그대로 서서 가만히 있게 했다. 종이 쳐서 급하게 반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긴 했지만,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여자아이일 거라고 생각하고 초점을 맞춘 탓에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지만, 한 번 의심하고 나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미하시일거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럼 가끔씩 들리던 좋아한다는 말도

 

손끝이,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미하시가 좋아한다고 제게 말하는 상상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어쩐지 몸을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양말 안에서 제자리를 지키던 발가락이 손과 함께 곱아졌고 얼굴은 뜨거운 것 같았다. 실제로 뜨거운 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억지로 펴서 얼굴에 대 본 손도 뜨거운 것 같이 느껴져서, 그래서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미하시의 얼굴을 당장 어떻게 볼지 그것 또한 알 수 없었다.

 

*

 

미하시의 얼굴을 어떻게 볼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벌써 모른 척하고 지낸 지가 몇 달 째였다. 필사적으로 모른 척을 하고 있었지만, 눈치채고 나니 몰랐던 것이 이상했을 정도로 미하시는 자신을 좋아한다는 티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같이 하교할 때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볼을 붉히거나 했는데 그걸 다 알아버린 나는 제가 더 이상해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탓에 단둘이서만 있는 일을 피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나 왠지 미하시의 그런 모습을 못 보는 게 아쉽게 느껴져서 금방 포기했었다.

 

아베군, 좋아해.

 

이렇게 자신의 마음이 흘러넘치도록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미하시의 모습을 못 보는 건 역시 아쉬우니까. 고백할 생각 없이 그저 혼자 좋아하고 있는 미하시의 마음 소리를 몰래 훔쳐들으면서 즐기고 있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직은 간질간질한 손끝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미안, 미하시. 하지만 꼭 네게 그 마음을 갚아줄게.

 

미하시에겐 들릴 리 없는 제 마음의 소리였지만, 꼭 미하시에게 전달되기라도 한 것처럼 미하시의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간질간질한 내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