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타마

[잣후시] 자몽에이드-1

dalian (다련) 2015. 6. 7. 20:46

지친 저녁이다. 알바를 하고 돌아가는 날이면 이사쿠 형의 집에 가는 이 좁은 길, 주택 사이로 달이 보였다. 오늘의 달은 보름달이다. 너무나도 환해서 가로등 없이 달빛만으로도 이 거리를 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멍하니 달빛을 보고 있다가 시간을 떠올리고 나는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으아, 이사쿠  걱정할 거야!”

평소와 다름없이 똑같은 길을 빨리 가려고 하고 있었는데,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곳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왼쪽 길이었다. 왼쪽 길은 이사쿠 형의 집으로 가는 길보다 훨씬 어둡고 으스스해 보여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으윽!”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뛰어갔다.
조금만 기다려요! 보건부원이 갈게요! 조금 무섭지만...

“인생은 스릴과 서스펜스!”

왼쪽 길을 열심히 따라 달리다 보니 공원이 나왔다. 이 근방을 매주 다녔지만, 처음 보는 공원이었다. 공원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서자, 누군가가 사람을 제압하고 팔을 꺾고 있는 것이불빛 사이로 희미하게 보였다. 

“저기, 겨.. 경찰 부를 거예요! 빨리 그 사람 놔주세요!”

내가 말하자마자 제압하고 있던 사람이 내 쪽을 쳐다보다가 제압당하는 사람을 쳐다봤다. 빛이 희미해서 어떤 표정인지 어떤 얼굴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고개의 방향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자, 그렇다는 군.”

제압하고 있던 사람이 제압당하던 사람을 풀어주면서 말했다.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 보다 제압당하던 사람이 다쳤으면 치료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입을 열려고 했는데, 사라졌다.

“어? 어디 갔지?”

“저 멀리 사라졌다. 그리고 너 그렇게 무턱대고 행동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

“네... 근데 저... 팔에서 뭐가 흘러요.”

“아, 이거 피다."

"흐익!"

" 그래서 말인데, 이 근처에 이 시간에 하는 약국에서 소독 약과 상처 약과 붕대를 좀 사다 줄 수 있겠어?”

“네. 빨리 갔다 올게요!”

피가 흐를 정도로 다친 걸로 보아 꽤 심한 상처일게 걱정돼서 빨리 약국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갔다. 보건부에서 지혈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걸 배우고, 의대를 다니는 이 사무 형에게도 조금씩 배웠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상처는 자신이 치료했던 터라 물건을 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달리느라 숨이 차오르고, 몸의 내부기관에 있는 것들이 심장을 때리는 것 같았지만, 부상자를 위해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다 사 왔어요! 제가 치료해드릴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보건부원이니까.”

“... 그래. 부탁하지.”

상처가 보이지 않아서 그의 스마트폰 조명으로 상처 부위를 비추었다. 상처는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칼 같은 데에 스친 것처럼 보였다. 일단, 소독을 해서 상처 주변을 닦고, 적당하게 약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았다. 붕대의 끝을 풀리지 않게 하지만 너무 세게는 말고 적당히 예쁘게 묶었다. 

“고마워.”

상처를 다 치료하고 나서야,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목소리다. 문득, 얼굴도 궁금해졌다. 하지만, 스마트 폰의 빛은 꺼졌다. 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아, 그의 얼굴은 화상으로 반쯤 덮여있었다. 내 눈이 커지는 걸 본 것일까. 그가 얼굴을 가리려 했다.

“아뇨! 괜찮아요! 신경 안 쓰이니까 안 그러셔도 돼요. 사실, 저 고아원 출신이라 더한 것도 많이 봤는걸요.”

“.. 그런가. 어쨌든 고마워. 후시키조군. 이건 내 연락처야. 사례를 할 테니까 네 연락처도 줬으면 좋겠어.”

눈꼬리를 휘며 연락처를 주는 그를 보니 갑자기 약간 멍해져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연락처를 준 뒤였다. 이름은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생각했더니 참,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저 멀리 돌아가는 그를 보다가 늦은 시각이 생각나 원래 가던 길을 떠올리고 이사쿠 형을 향해 빨리 뛰었다.

어쩐지 달빛이 아까보다, 가로등보다 훨씬 밝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