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마이사] 분홍빛 피-노보케인AU
이 글은 귯덤님이 만드신 세계관 노보케인의 AU입니다.
어쩌면 캐붕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의※
나는 너를 사랑했다.
매일 같이 날 챙겨주는 널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너를 알기 때문에, 나는 너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네가 쓰러졌다. 네가 환각이라도 보는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손을 이리저리 뻗고, 몸을 헐떡이고 이 모든 것이 내 눈앞에서 이루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네 뻗어진 손을 마주 잡고,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이 와서 널 붙잡고 제어하고 카즈마의 피를 먹인 후에야 너는 잠잠해졌다.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너를 사랑한 내 잘못.
네가 쓰러져 잠들어 있었던 그 밤, 네 옆에서 네게 속삭이며 다짐했다.
“토메사부로, 미안해. 널 사랑해. 모든 것을 바꿀 거야.”
바빠지기 전에, 이렇게라도 널 실컷 봐둘래.
오래전, 보급품 쟁탈전 때였을 까, 일반인이었던 과학자가 파랑새나 나이트메어는 왜 노보케인이 생성량이 많은지 노보케인 원리 같은 걸 연구하다죽었다더라 하는 얘기를 하며 그 원리를 알아서 나이트메어나 되고 싶다는얘기를 시시덕거리며 하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만약 실제로 일반인이 나이트메어가 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토메사부로가 그렇게 괴로워하진 않겠지?
그 뒤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끊임없는 연구.
내 몫의 수혈 팩을 다른 세력에게 주면서 노보케인이나 체질에 관련된 모든 책을 뒤지고, 연구했다. 설령 내가 금단증상에 빠진다 하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으니까. 일시적으로 노보케인의 생성량을 늘릴 수 있을 방안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하지만, 내가 너무 돌아다녔을까. 카즈마에게 그렇게 돌아다닐 거면, 링크를 끊고 떠나달라는 말을 들었다. 토메사부로가 말려주었다곤 해도, 위험했다. 아직은 아니다. 떠날 수 없다.
“이사쿠, 내가 생각해도 너 요즘 너무 돌아다니는 것 같다.”
“미안해, 토메사부로.”
네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저 쓰게 웃으며, 웃음 뒤에 진실을 감추었다.
“이사쿠, 너! 너 요즘 날 피하고 있는 거 아니냐! 왜 아무 말도 안 해주는 거냐!”
“미안해, 토메사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네 머리만 쓰다듬었다. 나는 네게 미안한 것이 참 많다.
카즈마에게 그런 말도 들었으니, 시간이 없었다. 다른 세력에 발걸음을 끊었지만, 그래도 빨리해야 했다. 실마리들을 조합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생채 실험뿐이었다. 대상은 나 뿐이었기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과 상처들이 매일같이 생겨났다. 이런 내 몸을 네가 걱정스레 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네 그 시선에도 기뻐할 만큼 바보다. 네 시선을 받는다는 것과 네가 이 완성품으로 더 이상 괴로워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아픔을 못 느낄 만큼, 그만큼.
드디어 완성했다. 이것으로 너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나를 희열에 빠뜨렸다. 잠들어 있는 너를 묶어놓았다. 곧, 너는 눈을 떴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사이로 네 까만 눈이 보였다.
“토메사부로, 미안해. 내가 널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널 괴롭게 만들어서 미안해. 네가 괴로워하는 게 싫었어. 금단증상이든, 네 자책이든. 그래서 널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어. ”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야. 마지막 주사.
토메사부로의 놀란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 주사를 놓았다. 반복된 많은 실험 탓에 속은 울렁이고 어지럽고 온몸의 장기가 비틀리는 느낌이 났다. 그렇지만, 토메사부로에게 이 주사를 놓아야 했다. 어지러운 시야 탓에, 토메사부로를 밀쳐서 눕혀버렸다. 다시 앉혀서 주사를 놓기엔 힘이 빠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힘으로 토메사부로의 위에 올라타고 주사를 놓았다. 이제 끝났다는 생각 탓일까, 몸을 지탱하던 마지막 힘도 빠지고 입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 기괴하게 빛나는 이 색을 마지막으로 내 세계는 끝났다. 기괴한 피들 사이로 마지막으로 네게 웃었다.
눈을 떴다. 끝났다고 생각한 내 세계는 아직 돌아가고 있었다.
밖이 너무 조용했다. 항상 시끌벅적한 아지트의 소리가 아니었다. 불안하다. 닫혀 있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중간쯤 열렸을 때, 익숙한 신발이 보였다. 이쪽에서 신발이 보이려면 사람이 문 앞에 쓰러져 있어야 가능했다. 다급히 문을 활짝 열었을 때, 네 모습이 보였다. 너는 온몸이 찢어지고, 그 상처에서 분홍빛 피가 흘렀다. 내가 만들어 놓은 피가 네 몸에서 존재를 뚜렷이 나타냈다. 내가 원한 것은 이 피를 흘리는 네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 조그마한 숨결이 느껴졌다.
“토메사부로! 토메사부로! 내.. 내가 지혈할 거 들고올게. 괜찮아. 괜찮아!”
“이사쿠...”
여러 가지 구급약품들이 있었던 곳에 가서 가져오려던 나를 네가 불렀다. 나는 네 얼굴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댔다. 네 목소리는 위태하고 너무 작아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넌 곧 숨을 거두었다. 내 앞에서. 내 귀엔 네 마지막 말만이 감돈다.
보고 싶었다. 이사쿠
너의 피는 분홍빛이었다. 아직은 따뜻한 분홍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