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미하] 어느새 네게 스며든
시작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집에 오라는 자신의 말에 수줍게 볼을 붉히고 예쁘게 눈을 깜빡거리는 렌을 본 게 한 시간 전인 것 같은데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이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흑심을 품고 렌을 집에 초대한 그 순간부터? 아니면 평소보다 더 신경 쓴 것 같은 렌을 은근슬쩍 더듬으며 목에서 나는 향을 맡을 때부터? 그에 놀란 렌을 자연스럽게 방으로 데려갔을 때부터? 나는 왜 이런 음흉한 짓밖에 못 떠올리는 거지?
생각하지 말자. 하루나 모토키. 네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이지 생각하는 꼴밖에 안돼.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나 떠올려!
“렌..그건..”
“모토키상, 이게 뭐, 예요?”
“별거.. 아니야!! 다른 거 보자, 우리. 응?”
“직박, 구리 폴더에 왜 비,밀번호 걸려있어요?”
“아무 것도 아니야! 정말로!”
“...정말요?”
“으,응.”
“그,럼 열어주,세요!”
“..그건..안돼.”
“왜요?”
“...끙.”
“야,한 거 있, 죠! 너무해! 저번에 저,희 집 오셨을 때는 저, 보고! 파, 렴치하다고!”
“하하..렌..응? 잘못했어. 나 봐줘. 응? 고개 돌리지 말고.”
곤란했다. 자신의 귀여운 연인이 너무 귀여워서 저질렀던 일이 그대로 돌아올 줄이야. 솔직히, 연인의 집에 가서 그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둘만이 있는 방에서 분위기를 잡고 옷 안에 손을 넣으면서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눕혀서 결국 바닥과 렌이 닿게 하고 키스를 하다 침대 밑의 그것을 발견해버린 것뿐이었는데. 렌의 취향이 잔뜩 담긴 그 간호사 컬렉션 야한 사진집을. 너무 귀여웠어도 잔뜩 놀리지 말걸.
“모,토키상. 연인을 두고 이, 런 걸 본다는 건 이렇게 입어,준다는 의미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건 그때 네가 부끄러워서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자신에게 야한 사진집을 들키고, 그것을 펼친 후, 처음부터 한 장 보고 렌을 번갈아보면서 점점 달아오르는 렌을 보는 게 좋아서 장난스럽게 한 말이었다. 귀 끝부터 시작해 귀 전체가 선홍빛으로 물들었고, 그다음엔 귓불이, 눈 밑까지 발갛게 달아오르는 렌은 사실 사진 속 그 누구보다 예쁘고 야해서 사진 속 그 어느 여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든 딴 생각이라면 렌이 이걸 입어주면 정말 좋겠다는 그런 정도였다.
“미안해, 잘못했어. 그때..놀린 건 렌, 네가 너무 예뻐서. 그러니까 화 풀어. 응?”
아, 화 풀렸다. 저렇게 또 귓불부터 봉숭아 꽃잎이 물들 듯이 사르르 물드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렌은 별로 화를 내거나 토라지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자신이 화를 내게 만들 때 자신이 방금 렌에게 했듯이 말투와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고 용서해달라는 듯이 눈꼬리를 내리면서 살짝 웃을 때 렌 본인도 모르는 반응을 즉각적으로 보여주었다. 가끔, 그런 렌 때문에 불안하긴 하지만, 자신 외엔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 위안으로 삼고 있었다.
“화..풀렸지? 이런 거 보지 말고, 우리 딴 거나하자. 기왕, 우리 집까지 왔잖아?”
“...네.”
“그럼, 이것부터.”
예쁘게 물든 렌을 보면서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시행했다. 역시, 집이라면, 해야지. 말갛게 뜬 눈에 비친 자신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 툭하면 즙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내리눌렀다. 놀란 연인에게서 작은 음성이 들리는 것을 들었지만, 무시하고 벌어진 입술을 틈타 혀를 집어넣었다. 안쪽으로 도망간 혀를 토닥이자 이내 곧 익숙해진 것처럼 점차 자신에게 맞춰 움직였다. 렌의 움직임에 만족감이 치솟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못하던 순진한 연인이 자신에게 물들었다는 것은 기분을 좋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젠, 순수할지라도 결코 순진하진 않은. 먹잇감을 잡은 맹수처럼 그르렁거릴 것은 눈으로 살며시 자신 아래의 연인을 쳐다봤다. 숨이 차 보여 입을 뗐다.
“모,토키상...”
“그래. 계속해야지.”
“으,으응”
힘겹게 내쉬는 숨을 느끼면서 다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미 몸은 바닥에 붙은 지 오래였다. 렌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반복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