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올마데쿠] 異質 [이질] 본문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이라는 건 행복한 일이다. 같은 마음이라면. 그래, 같은 마음이라면. 그럼, 같은 마음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는 어찌해야 할까.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배 안쪽이 뒤틀린 기분이 들었다. 메스껍고, 가슴이 시린 것 같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은 저에게 너무 낯선 감각이었다.
토시노리 상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는 말이 나와 같은 마음일까?
아닐지도 몰라. 그는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저 어린 제자의 마음을 부정해주지 않고 받아주는 걸지도. 손잡는 것도 꺼리는 것 같았는걸.
그와 내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다.”
“뭐가 같았으면 좋겠다는 거냐?”
“으악! 깜짝이야... 카,캇짱?”
“네놈, 뭐 하냐? 하여간, 병신같이.”
갑자기 들려오는 거친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와 좌우를 둘러보다가 뒤에서 자신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자신의 소꿉친구를 발견했다. 평소처럼 짜증이 깃든 듯한 얼굴에 속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살짝 찡그리는 미간과 꿈틀대는 입술을 보니 또 무언가 한소리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이, 정신 차리지? 점심시간 얼마 안 남았거든. 네 얼빠진 친구들이 안 보이냐?”
“어,어어? 으아, 우라라카양! 이이다군! 미안해! 생각에 빠져서.. 그냥 말 걸거나 먼저 가지 그랬어.. 둘은 벌써 다 먹었네! 나도 빨리 먹을게! 으악, 국수 다 불었다...”
“천천히 먹어, 데쿠 군.”
“그래, 빨리 먹는 식습관은 좋지 않다.”
“괜찮아. 어차피.. 이건 못 먹을 것 같아.. 그냥 반에 가자.”
꼬르륵, 몇 입 먹지도 못하고 다 불어버린 국수 면발을 버리고 그릇을 수거대에 둔 다음에 반으로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크게 들린 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 멋쩍게 웃었다.
“미안해, 우라라카양, 이이다군. 먼저 갈래? 난 매점을 좀 갔다가 가야 할 것 같아.”
“알았어. 다음시간은 프레젠트 마이크 시간이니까 너무 서두르지 말고 와!”
“그런 말은 뭔가! 우라라카군! 학생은 수업시간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네,네~! 어서 가자, 이이다군.”
점심시간이 끝나기 십분 밖에 남지 않은 매점은 한산했다. 거의 사람이 없어서 빨리 주문하고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자신이 좋아하는 초코 소라빵이 한 개 남아있었다. 집어 드는 순간 어디서 뻗어오는 손과 맞닿았다.
“캇짱..?”
“데쿠자식, 손 안 떼냐? 내가 집었잖아.”
“어... 응. 근데 캇짱 초코소라빵 안 좋아하잖아..?”
“알게 뭐야. 멍청한 새끼.”
초코 소라빵에서 손을 떼고 다른 빵들을 보고 있었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가 시야를 가렸다. 너무 가까이에 붙어서 갈색빛이 보인다는 것밖에 인지할 수 없었다. 멍청한 새끼. 하고 욕설이 들린 다음에 그 물체가 눈에서 떨어졌다. 초코 소라빵이었다.
“어..캇짱? 이거 왜..?”
“너나 처먹어라. 네 말대로 난 이거 싫어하니까. 계산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어디, 데쿠 새끼. 뭔가 또 쓰잘데기 없는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넌 생각이 너무 많아.”
“....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야.”
“아앙? 그럼 뭔데?”
“좋아하는 사람이.. 날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게 쓸데없는 고민이지, 쓸데없는 게 아니면 뭐냐?”
“그렇게 말하지 마! 정말, 날 좋아해서 사귀어주는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럼 헤어지든지.”
“뭐?”
“니가 그렇게 느낀다면서. 그럼 그런 거겠지. 사귀는 당사자가 알지, 내가 뭘 아냐? 멍청한 데쿠 자식.”
별거 아닌 듯 툭 하고 던진 그 말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손에서 초코 소라빵이 툭 떨어진 것 같았지만, 주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토시노리상이랑 헤어진다는 그 한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헤어짐, 토시노리상과의 헤어짐. 생각만으로 무릎이 풀린 것 같은데, 다리가 파들거리는데, 너무 무거워진 머리가 한 방울, 두 방울 매끈한 바닥에 자국을 남기는 것밖에 못 보게 하는데 내가, 헤어질 수 있을까?
몸을 추수리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있는 채로 있었다. 들었으나 듣지 못하고, 보았으나 보지 못하는 상태로 그 무엇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얼마가 지났는지 언제 들어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니...? 어디 아파? 말해보렴.”
“올마이트...”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쏟아지던 눈물이 더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사랑스럽게 보는 것 같은 그 따스함이 이제는 두려웠다. 소중한 것처럼 부르지 말아주세요. 토시노리상.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싶어지잖아요.
“미도리야 소년..?”
“..괜찮아요! 올마이트!”
“그..렇구나. 수업에 안 들어왔다고 해서 놀랐단다. 소년!”
“앗, 언제 벌써? 7교시..?! 헉, 오늘 6교시는 아이자와 선생님이었는데!”
“어서 가 보렴. 아이자와가 나에게 찾아왔었어.”
“네! 그럼 나중에 뵈어요!”
평소보다 과장해서 반응하고 웃으면서 뒤돌아섰다. 돌아서자말자 입에 띄웠던 미소가 사라졌다. 억지웃음. 토시노리상도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른 척해주는 것이겠지. 입술 안쪽을 이로 깨물었다.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슬펐다. 저가 이기적일 수 있도록 조금 덜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
주위의 소리를 들었다. 그냥 웃고 넘기곤 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갈수록 엉망이었다. 몇 번을 더 정신을 빼놓고 다니기도 했고 경고도 들었다. 한숨이 나왔다. 토시노리상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도 잘 해야 하는데.
점심을 무르고, 혼자 학교 뒤편에서 주저앉아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곳, 시끌벅적한 학교 안과 달리 분리되어 있는 듯한 공간이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약간씩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식당으로 뛰어가는 발소리들 그 여러 가지의 소리들이 살짝 들려오는 느낌이 묘해서 좋았다. 요즘, 세상과 이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저에게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즈쿠, 뭐하니?”
“..토시노리상?”
“같이 도시락 먹을까?”
“..네.”
잘 만들어진 도시락을 그가 건네준 나무젓가락으로 조금씩 먹고 있다가 문득 들려오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얕게 뇌리에 스치던 의문점은 그의 눈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요즘 들어, 모른 척해 주던 그의 눈과 달리 제대로 마주하고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힘없이 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꽉 쥐어서 오히려 더 집어먹기 힘들어진 젓가락을 보다가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즈쿠. 내가 왜 왔는 지 알 것 같니..?”
“..네. 절 혼..내려 오셨나요?”
“아니야. 바쿠고군에게 들었단다. 내가..널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식욕이 없는 와중에도 맛있게 느껴지던 음식의 향기는 그 어느 쓰레기의 냄새보다 역해져서 숨을 쉬기 어려웠고,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래도 떠날 수 없었다. 설령, 헤어지게 되더라도 토시노리상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날 보렴. 눈 크게 뜨고 잘 봐. 네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짝 숙였던 고개를 제대로 그의 눈에 맞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한 눈,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토시노리상을.
“그냥 그저 너를 안타깝게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동정으로 받아들일 만큼 어리석지 않단다. 이즈쿠, 너야말로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아. 나를 보렴.”
“토시노리상...”
“너를 사랑한단다.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굳어있는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귓가에 속삭여주는 그의 목소리에 울음이 나왔다. 사실은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은 내 잘못된 생각이고 모든 것이 괜찮다는 말이,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들었다. 그 무엇보다 나를 하나뿐인 사랑으로 여겨주는 말을 들었다. 따뜻하게 나를 품어주는 그 품속에서 굳어있던 몸이 풀어져가면서 다시 바깥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묘한 느낌 속에서 저도 그 속에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