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하루미하] 무채색 벚꽃나무 본문
좋은 날이다. 헤어지기 좋은 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학교 정문 근처에 아름답게 존재를 뽐내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벚꽃들을 햇빛 가루들과 함께 흘리는 것들을 눈 안에 담으면서 그와 헤어졌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슬픈 말들이 내려오는 벚꽃들과 어우러져 비정상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노란색 분홍색 갈색 다시 노란색, 헤어지자는 이유의 색들이 그의 입의 움직임과 함께 계속해서 바뀌었다. 색들이 말을 하고 돌아서는 그를 따라 바람처럼 하늘거리며 춤을 추었다. 멀어지는 그를 따라 점점 색이 옅어졌다.
색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색을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색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도 나 혼자 무채색으로 살아가는 걸까.
벚꽃나무에 매달린 색이 물들지 않은 벚꽃송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너,도 색, 물들고 싶어?”
나도.
누군가가 색만 조금 건네주면 바로 확 물들 수 있을 것 같은 벚꽃을 바라보면서 부러움이 생겼다.
“그래,도 넌 금방 물,들수있잖아. 사랑도, 많,이 받고. 난, 날 확 물들,여 줄, 사람 못, 찾았는데.”
좋겠다.
부러움과 함께 불평의 말이 아무런 색도 없이 입에서 나왔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말들이 흩어질 때까지 색이 빛을 발하는 것과 다르게 비교된 채로 혼자서 이질적으로 무채색으로 구름이 되었다. 기분이 또 슬퍼져서 눈을 두어 번 깜밖였다. 이렇게 눈을 깜밖이는 사이 색이 물들면 얼마나 좋을까.
“야, 진짜 혼자 가냐?”
눈을 감고 있어야만 보이는 검은 세계 속을 화려하게 빛나는 하얀색이 밝혔다. 항상 화려하게 얽혀있던 색채 속에서 나와 다른 색이 있는 하얀 빛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순백은 다른 색들을 덮고 흔적을 남겨놓아있었다. 색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 입에서 나오는 하얀 빛과 달리 까만 머리칼의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남자를 쫓아가 붙잡았다.
“저,기!”
“누구?”
눈앞에서 보는 색은 옅어지는 흔적보다 조금 더 하얗고, 깨끗했다. 점점 내게도 그의 색이 물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미,하시 렌인데,요!”
“미하시 렌?”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입에서 순간 제가 봐왔던 그 어떤 색보다 화려한 여러 색들이 쏟아져서 제 몸에 물들었다. 재빨리 들어 본 손에는 색이 있었다. 항상 봐왔던 아무것도 없는 색이 아니라, 그의 하얀색과 달리 색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그 무채색들이 아니라.
“고마워,요.”
남자는 뜻 모를 나의 말에 살짝 찌푸려있던 미간을 더 찌푸리며 날 훑어봤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웃음이 나왔다. 생전 처음 보는 나에게도 있는 색이 너무 예뻐서 그랬다.
“이, 름, 뭐예요?”
“하루나 모토키인데, 너 진짜 누구냐?”
“하,루나 모토키.”
그의 이름을 담은 그의 색이 내 입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그 순간, 벚꽃을 실은 바람이 불어왔다. 아주 예쁘게 물든 벚꽃을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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