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셈한공] 감복숭아빛 본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내가 차하나를 좋아한다는 것, 독고오공도 차하나를 좋아한다는 것. 차하나는 가만히 있어도 빛을 내뿜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차하나의 오랜 친구였다. 그렇게 차하나를 오래 봐온 만큼 우리는 차하나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차하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차하나를 좋아하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실은, 알고는 있었다. 애써 외면했을 뿐. 자꾸 보고 싶은 것도,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것도, 독고오공과 다정히 얘기하는 차하나를 보는 것이 불편한 것도 흔한 친구의 소유욕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차하나를 좋아한다는 사실. 친구여야 한다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 자신만의 고집 밑에 숨기려 했다.
계속 숨기려 했던 사실을 결국에는 인정해버리고 만 것은 너의 쓰디쓴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구름 낀 밤, 할 말이 있다며 너의 집에 초대한 너를 따라 네 방에 들어갔던 그날, 너는 아주 아름다웠다. 선크림도 안 바르지만 타지 않는 하얀 피부, 발그레해진 분홍빛 뺨, 기분이 좋게 웃을 때에만 내려가며 접히는 눈꼬리, 그와 함께 올라간 입꼬리. 하얀색과 분홍색의 조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져 복숭아 같은 너는 그날따라 더욱 아름다웠다.
“세모야, 실은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너는 별로 혐오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 오공이가 좋아. 오공이랑 며칠 전부터 사귀고 있어.
네 아름다움이 비정상적으로 다가와서 몽롱하게 듣고 있던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그 말.
“뭐?”
“이주 전쯤, 이번 달의 우리 반 책을 가지고 도서실에서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침 내려가던 오공이가 도와줬거든. 전에도 그런 일은 많았지만, 그날은 실수로 책도 엎어버리고 그렇지만 오공이가 도와주고. 말이 횡설수설해지네. 부끄러워서 그런가 봐. 그날 이후로 오공이를 보면 두근두근하더라고.”
발그스레했던 분홍빛 뺨이 점점 더 붉어지는 걸 보고 있는 나는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분명 점점 창백해져 갔었을 것이다. 네가 말한 그날엔 나도 너를 보았다. 널 찾아 네 반에 갔을 때, 네가 보이지 않아서 네 반 앞에서 널 기다리고 있었는데, 넌 독고오공과 함께 계단으로 내려왔다. 독고오공과 얘기를 하며 내려오는 너는 약간 상기된 듯 보여서 의문스럽게 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독고오공이 슬쩍 웃었다. 어떤 웃음인 줄 알 수 없었지만, 기분이 나빠져 반으로 돌아갔다.
독고오공에 관한 얘기를 하며 웃는 널 보니 이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웃음과 말이 내게 수많은 후회와 눈물을 가져왔다는 것을 너는 몰랐을 것이다. 나는 네가 너무 아름다워 울었다. 독고오공을 사랑하는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지 못한 죄. 그렇지만 만약에 내가 그날, 그곳에 내가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나, 이 아름다운 사람아.
'또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셈공] 망각, 그 두번째 이야기 (0) | 2015.08.07 |
---|---|
[셈공]망각for 몽시뽕님 (0) | 2015.07.25 |
[셈한] 기억상실 (0) | 2015.06.13 |
[유딩] 두려움, 기다림, 그리고 사랑 for 쟝아 (0) | 2015.05.02 |
셈냥이 for venna (0) | 2015.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