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셈한] 기억상실 본문
해도 뜨지 않는 낮, 네가 사라졌다.
매연이 쌓이고 쌓여 그리고 그곳에 노을이 물들어 주황빛의 흐린 하늘 날,태양이 보이지 않던 날, 내가 알던 네가 사라졌다.
“너는 누구야?”
근래에 점점 잊어버리는 게 많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사소한 것을 자주 까먹는 너이기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네가 좋아하는 분야라서 매일같이 말하던 용어를 잊어버렸을 때는 불안했지만, 겉으로 괜찮은 척하며 나를 속였다. 속이고 또 속여서 태연함을 가장하고 불안함을 떨쳐내려 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그런데 네가 날 잊었다.
망연자실해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그런 내가 이상하게 보였는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네 버릇이다. 십수 년간 봐왔던.
“나는 세모. 권세모.”
“그게 누군데?”
“너를 사랑하는 사람.”
네가 묻는 말에 심장에 천 개의 바늘이 꽂히고, 그 바늘을 빼낸 자국에서 동맥, 모세혈관, 정맥을 타고 돌아온 모든 혈액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심장에서 빠져나간 피는 심장을 뺀 내 몸 나머지를 채우고, 내 심장은 차가워졌다.
“응?”
“그리고 너도... 날 사랑했어.”
“넌 남자잖아.”
“...”
“말도 안 돼."
“그러게, 말도 안 되지.”
“우리 둘은 남잔데.”
차가워진 심장은 이제 얼어붙어 서서히 깨지고 있었다. 깨진 파편은 액체 위에 떨어져 액체를 굳게 한다. 그리고 결국 액체까지 모두 굳어지고 내 몸은 하얘졌다. 하얘진 몸은 움직이지 않아서, 널 계속 똑같은 위치에서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네가 손을 잡아왔다. 네 손이 닿은 부분이 따뜻해져간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아아, 이번엔 파래졌다.
“저기, 어디 아파?”
“아니.”
그래, 저 말을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처음이 되었을 뿐. 너는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너는 여전히 따뜻하므로
그날 이후로, 너는 매일 아침 나를 처음 볼 때마다 누구냐고 물어왔다. 물론, 그건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차 박사님, 차두리, 주딩요, 독고 오공, 네옹이 형... 모두에게 그랬다. 모두가 현재의 널 마주하고 뒤에서 울었다. 차 박사님은 우리 앞에선 울지 않았지만, 네게 웃어주실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다크서클이 늘어가고, 야위어 가시는 모습에 알 수 있었다. 차 박사님과 나는 매일 너를 만나고, 네게 이름을 알려준다. 차 박사님은 바쁘셔서 내가 네 곁에 남아있을 때가 많다. 사실, 내가 차 박사님을 보낸다. 차 박사님은 미안하고 안쓰러운 듯이 나를 보고 나 보고 가라 하시지만, 내가 너를 떠날 수 있을 리가 없다. 박사님은 괜찮으냐고 묻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한다. 그렇지만 하나야, 지금의 나는 조금 아픈 것 같아.
네가 잠들 때에만 말할 수 있는 말. 네가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말할 수 없다. 그저 이렇게 네 손을 붙잡고, 빌고 또 빈다. 그러면 이렇게 네가 내 이름을 부르고 둘이서 지내던 상상이 이뤄질 것만 같아서.
“세모야.”
“어, 하나야. 깼어?”
“응.”
순간, 네가 돌아온 것 같아서 멈칫했다. 기억을 잃은 너도 눈을 마주하고 말하는 것과 그 눈 속에 온전히 나만을 담고 내 이름을 속삭이듯 조용히 부르는 것도 똑같아서. 이렇게 보면, 너는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하나야, 뭐 필요한 건 없고? 배는 안 고파?”
“아니, 그보다 있잖아... 세모야.”
“왜?”
“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너는 자고 있지 않았던 걸까. 심장이 또다시 멈췄다.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 응.”
“그래? 난 지금의 나도 좋은데...”
울컥-목구멍 안쪽에서부터 말이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게 뭐야?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널 사랑하는 나는 어떡해?
“네가 나한테 바라는 말이 뭐야? 지금의 널 사랑한다 그래야 해? 나는 아니야. 그래!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네가 다시 내 귀에 사랑한다 속삭여 줬으면 좋겠어!”
욱해서 말이 세게 나왔다. 부드럽고 다정한 갈색의 눈동자가 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 네게 짜증 내고 있는 모습이 역겹다. 너에게 짜증 낼 것이 아닌 것을 안다. 모두 내게 해야 할 말이다. 봐봐. 이렇게 사랑스러운 하나에게 넌 뭐라 하고 있어?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 못됐네. 권세모.
“세모야, 화났으면 미안해... 하지만, 그거 알아? 세모야? 너, 매일 날 보면서 웃어주지만, 그건 날 향한 게 아니야. 네 눈은 내가 아닌 날 넘어서 누군가를 보고 있어.”
이런 상황 속이지만, 내 머릿속엔 하나의 말속 한 가지만 맴돈다. 매일? 매일이라고? 지금 단기간이지만 기억이 돌아온 거지? 머릿속은 환희로 가득 찬다. 이런 날 눈치챈 걸까. 하나는 날 보다가 슬픈 미소를 짓고 날 지나쳐 나갔다.
“세모야. 나도 여기에 있었어.”
하나는 지나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하나는 문을 닫고 나갔지만, 쫓아가지못 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가 서 있어 가리고 있던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 해가 보이지 않는 낮.
그리고 넌 사라졌다.
해도 뜨지 않는 낮, 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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