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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한공] 小幸运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랑에 빠진다는 순정만화 속의 이야기를 믿었었다. 누군가가 기증했을 몇 없는 고아원의 만화책은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비록 그게 순정만화라 하더라도. 그 때문이었을까, 정말로 나는 사랑은 어느 순간에 운명같이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켜켜이 쌓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랑이 있을 거라고 알지 못 했다.
너를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을 알았어도, 항상 너와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했어도, 그 모든 것이 친구를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친한 친구니까, 조금 더 특별하다고 그렇게만 생각했다.
“고백해! 걔가 좋다며!”
“이게 좋아하는 걸까…?”
“야, 그럼 계속 같이 있고 싶고, 걔한테 좀 더 특별해지고 싶고, 걔 생각만 나는데 그게 좋아하는 게 아니고 뭐야!”
지나가다 들은 여자애들의 수다를 듣고서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증상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너인 것 같다고 떠올린 이후로 네 생각이 지워지지 않아서 그제야 나는 너로 인해 사랑을 배웠다. 조금씩 쉬지 않고 내려서 켜켜이 쌓인 네가 이미 여름의 햇빛조차도 녹일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잠식해버린 이후였다. 이미.
순정만화와 현실이 정말 다르다고 느끼게 된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나는 사랑을 배우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사랑스러워져가고 있었다면, 나는 사랑을 하고 우울함에 빠졌다. 내 사랑은 결코 사랑스럽지도 축복받을 만 하지도 않았다. 우울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어서 기운 없이 지내고 있을 때, 나를 건져 올린 사람은 불행하게도 너였다. 눈이 한 겹 또 쌓인 것을 느꼈다.
“세모야, 요새 어디 안 좋아?”
“…아냐.”
“말 못할 일이야?”
“친구에다가…남자인 사람이 갑자기 고백해오면 너라면 어떨 것 같아?”
“어…? 음,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하지만 거절은 하겠지만 싫은 건 아니고 그냥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할래. 친구에게 고백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가벼운 마음은 아닐 테니까… 그냥 그렇게 말할래.”
정말 불행하게도 네 대답이 상냥해서 이기적이게도 나는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고백을 한다고 마음을 먹으니 차일 것을 알아도 괜히 마음이 설레어서 밤잠을 설쳤다. 당장 곧이 아니라 하굣길에 고백을 할 거라고 속으로 되뇌면서도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만져보기도 하고 퀭한 얼굴이 신경 쓰여 눈가를 만져보기도 했다.
평소와 같이 함께 등교하려 너의 집 앞에 서서 네가 나오길 기다렸다. 사랑을 배우고 나서야 알았지만, 두리가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아서 너와 둘만 등교하는 것이 기뻤다. 네가 남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나와 대화하면서 눈을 마주쳐주는 게 더 좋고 등굣길엔 그걸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잠이 많아서 허둥지둥 뛰어나오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지금처럼.
“세모야, 늦어서 미안해!”
“아냐. 얼른 가자.”
너와 대화하면서 네 걸음에 맞춰서 걷는 등굣길은 평소와 같았지만, 내 상태는 평소와 같지 않았다. 네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 내 상태를 못 알아채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잠시 대화가 끊어졌을 때, 지금이 하굣길에 잠시 어디를 들렀다가 가자고 말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하나야, 오늘 하교할 때…”
“세모야, 내가 어제…”
“먼저 얘기해.”
“아, 응! 어제 오공이한테 연락이 왔어!”
“어…응. 뭐래?”
네 얼굴이 이상했다. 독고 오공에게 연락이 왔다고 웃는 네 얼굴이 마치 사랑을 알고 처음으로 네 생각을 하며 거울을 봤을 때 내가 본 모습과 똑같이 보였다.
“오공이가… 그렇게 말하더라! 나도 한번 거제도에 가보고 싶어.”
“오공이랑 온달이가…”
학교에 도착해서 네 반 앞에서 서로 갈라지기 전까지 너는 독고오공과 관련된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네가 너무 행복해 보였다. 나는 너로 인해 사랑을 배우고 너의 사랑을 알아버렸다. 평소라면 거의 기계적으로 답하며 기분을 조절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알아채줬을 네가 이야기를 하는 게 신나서 나를 신경 써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채버리는 내가 미웠다. 네가 아니라. 내 사랑이 미웠다. 네게 대답을 신경 써서 못하게 하는 사랑이 혐오스러웠고, 너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사랑이 야속했다. 그렇지만, 너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좋아하면서 말하는 네가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게 웃는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너의 사랑을 내보일 때 빛나고 있었다. 너의 사랑은 너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네 말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언제 내가 반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가 무겁고 어딘가 아파서 정신이 몽롱해졌다가 희미하게나마 정신의 끄나풀이라도 잡았더니 집이었다. 언뜻 보건 선생님이 조퇴를 권유해주셨던 게 떠올랐다.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채로 어떻게든 집에 온 모양이었다.
침대와 베게 속에 파묻혀서 잠이나 자려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뜨겁고 흐릿한 정신 속에서 자꾸만 네가 떠올랐다.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여러 기억 속에 그 어디에서든지 네가 항상 있었다. 항상 너를 보고 있는 나도 있었다. 이제 그만 자고 싶었다. 내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으니 이제 그만 보고 싶었다. 더운 숨과 흐르는 식은땀에 섞여서 눈물이 흘렀다.
잠들었었는지, 정신을 잃었었는지 눈을 떴을 때 네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 상상이 만들어낸 너인 줄 알았다.
“세모야, 괜찮아?”
“…차하, 나?”
“응. 몸이 안 좋으면 어제 아침에 말하지 그랬어. 너 어제 잠들어서 지금 깬 거야. 어제도 왔었는데, 네가 잘 자고 있어서 다시 돌아갔어.”
“몰랐어.”
“휴, 너도 가끔 보면 은근 잘 아픈 것 같아. 우리는 그렇게 아픈 적은 없었는데 너는 깁스도 해보고…”
“그런가…”
“두리도 너 걱정하더라.”
“허약하다고 놀린 건 아니고?”
“…조금?”
너와 대화하면서 실실 웃고 있자니 조금 아픈 게 진정돼가는 것 같았다. 너를 빼고 흐릿하게 보이던 배경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 오공이 말이야. 연락 오랜만에 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고등학교부터 우리랑 같이 대도시에서 다닌대!”
“…뭐?”
“반갑지 않아?”
“응…. 다시…돌아간 느낌이겠다.”
“그치!”
다시 흐릿해졌다. 환하게 웃는 네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정되나 했던 마음도 다시 일렁였다. 차가운 물수건 덕분에 가시나 했던 뜨거움이 물수건에서 김이 나도록 다시 오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와중에도 너만큼은 내 세계에서 또렷하다는 것이 슬펐다. 또렷하게 빛나는 네가 너무 예뻐서 더 보고 싶었지만, 이젠 더 이상 힘들 것 같았다.
“하, 나야. 미안한데 이제 조금 쉬고 싶어. 미안.”
“어? 어, 아냐아냐. 내가 미안해. 이제 갈게.”
문을 닫고 나가면서 얼른 나아라고 하는 네 목소리가 들렸다.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머릿속까지 도착한 목소리가 흐릿한 의식의 흐름을 타고 춤을 췄다. 네 목소리가 네가 되어서 나와 춤을 췄다. 그러다가 네가 독고 오공과 춤을 췄다. 춤을 추는 네가 상상 속에서조차도 나와 있을 때보다 아름답게 웃었다. 정신이 흔들거리며 상상도 흔들거리는 와중에도 네가 그렇게 웃었다.
나는 정말로 안되겠구나.
너와 네 사랑의 행복을 빌자마자 그게 정답이었다는 듯이 잠에 빠졌다. 자고 일어난 후엔 열병이 씼은 듯이 사라져있었다. 슬펐다. 내 열병은 네 행복을 빌어주면서 끝난다는 게. 이기적이었지만 그랬다. 네가 내게 사랑을 알려 주었을때도 네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아도 한번도 네가 미운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 미웠다. 내 사랑의 아픔조차 너로 인해 끝났다는 게 어쩐지 사랑의 자유를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 조그마한 미움은 네 얼굴을 보면서 사라졌다. 나를 보며 나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너를 보니 사랑의 자유를 빼앗겼다 해도 그게 다행인 것 같았다. 내가 네 사랑을 알아서 네 사랑을 빌어줄 수 있으니까. 내 멋대로 사랑해서 쌓인 눈들을 퍼내면서 네 사랑을 볼 때가 온 것 같았다. 이제는 봄이 오게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겨울이 다가오던 날에 겨울을 떠나보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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