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셈한] 무형의 시간을 보내는 방법 본문
3시간, 3시간 후면 전화기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너를 만날 수 있게 된다. 5개월 정도만이다. 이번엔 꽤 빠른 편이었지만 그래도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벌써부터 이 거지 같은 유리막 앞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걷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한껏 치장을 하고 유리막 앞에서 유리막 너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다들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있는 게 틀림없다. 너를 만나기만을 바라는 나처럼.
내가 유리막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이상한 게 생긴 건, 몇 년 전. 하나와 사귄 지 3년째였던 그날이었다. 하나와의 약속을 위해 약속 장소로 뛰어가다가 나는 이 유리막에 부딪쳤었다. 분명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는 데도, 조금만 더 가면 하나를 만날 수 있는데도 난 갈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유리막이 전파를 방해하진 않아서 하나에게 연락을 할 수는 있었지만,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고작, 한 발자국의 유리막 때문에. 유리막을 사이에 두고 건네주지 못한 선물을 주기 위해 유리막을 두드리고, 건너편의 하나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대봐도 듣지 못 했다. 결국, 그날의 마지막 기억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울고 있는 하나와 나였었다.
그날, 나와 하나가 울면서 생각하기 싫어했던 것은 실제가 되어, 다음날에도 우린 만날 수 없었다. 이 유리막은 세계 여러 군데에 갑자기 생겨나서 같은 국가 내라도 유리막 저 편과 시차를 만들어버렸다. 열리지 않는 유리막에 좌절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유리막 너머와 다르게, 가지각색으로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뉴스를 통해 보다가 내 시계를 봤을 때, 하나가 있는 곳과 다른 시각임을 확인하고 시계 위로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 못했었다. 지금은 이 유리막이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시간이 일치해지는 어떤 날에 24시간 동안 열리게 된다는 걸 알고 몇 번의 하루를 보낸 터라 그저 하루하루 뉴스를 보며 유리막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지만.
째깍째깍, 이제 5초 남았다. 5초 후면 이 유리막이 열리고 유리막에 비치는 갈색빛의 너를 안을 수 있다.
5,4,3,2,1
열렸다. 내가 한 발자국, 네가 한 발자국. 그리고 우리는 마주 안았다. 그리고 서로를 보고 웃는다. 이게 너와 나의 오늘의 시작이다.
몇 번의 아쉬운 하루를 보내고 우리가 선택한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서로의 집에서 서로만 바라보고 그냥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저 둘이서 함께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해져서 다른 어느 것에도 잡을 수 없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조곤조곤하게 귀에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동안 서로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듣고,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자꾸만 움직이는 시곗바늘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의식하지 마. 항상 그랬듯이. 지금이 중요하니까.”
“... 응. 알고 있어.”
“사랑해.”
“나도.”
*
시간은 형태가 없어 잡을 수 없어서, 어쩔 수없이 언제나 헤어짐이 다가온다. 우리는 마지막 한 시간 전부터는 항상 그 길을 걷는다. 유리막에 갇혀서 다가갈 수 없었던 그 한 발자국을 떠올리면서.
“세모야.”
“응.”
“다음에 또 열리겠지?”
“응.”
“그래. 항상 그랬으니까... 그러니까 또 열리겠지.”
내 손에 잡혀있는 하나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우리가 헤어지기 전 항상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갑자기 생긴 이 유리막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불안함과 다시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무서움, 그를 능가하는 내 연인의 부재. 단 1초만 지나도 맞닿고 있던 손이 느껴지지 않게 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건 그런 거였다.
이제 남은 건 1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로의 한 발자국을 남기고 섰다. 옆에 있는 또 다른 커플이 울면서 마지막 말을 빠르게 전하려 시끄럽게 굴고 있을 동안에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또 만날 거야.
“하나야. 또 만나.”
대답을 듣기 전, 유리막이 다시 닫혔다. 하나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입모양만 보였다. 다시 듣기 위해 전화를 거는 일은 하지 않았다. 대답은 알고 있었으니까.
‘또 만나.’
너와 나의 오늘은 방금 끝났다. 나는 또 다음번의 오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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