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점점 추워지는 가을 날씨에 춘추복을 꺼냈다. 엄마가 가을 날씨를 대비해서 빨아놓은 춘추복에서 섬유 유연제 향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섬유 유연제 향기가 좋아 느긋하게 맡고 있으려 하니 산통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딩요야- 이 가시나, 뭐 하고 앉아빠져 있노. 빨리 준비 안 하나?!” “아! 엄마! 진짜 여유로운 아침 다 망친다니까!” 아, 진짜 엄마는 가을 타는 것도 없다니까, 진짜. 나는 구시렁대면서 옷을 갈아입고 밑으로 내려갔다. 확실히 춘추복이 하복보다 입을 게 많아서 평소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려가서 부엌에 있는 시계를 보면 6시 30분이었던 것에 비해, 오늘은 6시 35분이었다. 으아, 밥 먹는 시간이 줄어들겠다! 밥 먹으면서 스마트 폰으로 카톡을 하고 있으면 엄마가 ..
한여름인 것을 실감하듯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에 세모는 목이 말라 왔다. 집에 오니 에어컨 바람 덕에 땀에 젖어있던 등이 시원해졌지만 여전히 목은 타는 것만 같아 부엌 구석에 있는 정수기로 향했다. "아, 맞다. 고장 났지." 정수기를 향해 다가갔을 때 정수기에 붙여진 포스트잇 속 고장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독고오공이 그 특유의 깔끔한 글씨체로 크게 써 놓은 글씨는 너무 목이 말랐던 탓에 멀리서 보지 못 했다. 하는 수 없이 냉장고로 발걸음을 돌리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투명한 액체가 들어있는 처음 본 물병, 하지만 무언가 찝찝한 기분 탓일까. 다른 물병을 찾아보지만 냉동실에 얼린 물조차 없다. 찝찝하긴 하지만, 목이 더 말랐던 까닭에 결..
눈앞이 캄캄했다. 독고오공을 좋아하게 되다니. 심지어 독고오공은 남자고 우리는 친구사이다. 친구인 만큼 독고오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상형도. 가망이 없었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있을까 암담한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아 이내 세모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잠이 들 수 없어 밤새 끙끙거리던 새 아침이 되었는지 창문 밖이 환해지고 있었다. 학교에 갈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밖에서 요리하는 리모의 소리가 들린다. 평소 같으면 아침메뉴에 대해 생각하며 두려워 할 세모였지만, 머릿속에 오공이 생각뿐이라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 깊은 고민 끝에 잠시간 독고오공과 떨어져 있기로 결정했다. 그래 이것이 독고오공과 자신 둘 다에게 좋은 결정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제 그만..